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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의 연합을 통한 회복과 사이버 에큐메니즘(Cyber Ecumenism)

  • Hanna Kim
  • Mar 3, 2020
  • 15 min read

이 글은 2020년 2월5일 CCA(Christian Conference of Asia) 신학 회의에 참석하여 발표한 내용을 한글로 번역한 것입니다.


김한나

서론


이번 CCA 총회의 주제는 ‘God, Renew Us In Your Spirt and Restore the Creation’ (하느님, 우리를 당신의 영으로 새롭게 하시고 창조를 회복시켜주소서)이다. 이 글은 이 주제를 반영하여 진정한 회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부주제인 ‘Toward Affirming the Will of God’(하느님의 뜻을 확고히 함을 향하여)을 고찰하며 ‘하느님의 뜻’을 사이버 세계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해 서술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이버 세계에 대한 고찰과 함께 사이버 에큐메니즘(Cyber Ecumenism)에 대한 필자의 정의와 이와 관련된 중요한 신학적이며 실천적인 과제들을 제안하였다. 또한,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사이버 세계 또한 교회 공동체의 ‘일치의 정신’의 회복과 그로 인한 ‘친교’의 회복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에큐메니컬 운동을 위한 사이버 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1. 회복에 대한 신학적 성찰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애가 5.21/공동번역)


인간의 진정한 회복은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은 그들 자신과 선조들의 죄로 인해 하느님을 떠나 고통과 슬픔의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선지자 예레미아는 애가를 통해 유다 백성을 다시 하느님께로 회복시켜 달라고 간절히 호소한다. 애가 5장 21을 자세히 보면, 그는 그들이 먼저 하느님께 되돌아감에 앞서, 그들을 먼저 하느님께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구한다. 이것은 회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닌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회복의 주체로서 하느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사역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이사야 65.13-16). 그에 반해 세상을 통해 누리는 쾌락은 일시적이고 공허하며, 깊은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65:13)가 언급한 대로 목마르고 굶주린 경험일 뿐, 하느님과의 관계를 대체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진정한 위로와 만족을 주는 참된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온전한 연합에 이르는 것이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 10:10). 생명의 원천이시며 영원하신 하느님 안에서 인간의 생명은 회복되며 영원한 기쁨과 전인적으로 충만한 상태를 누리게 된다.


또한,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또 다른 관계의 회복을 불러온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로마서 15.5-6). 바울이 언급한 것처럼,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그 뜻으로 하나가 된다. 즉, 서로가 서로의 뜻을 맞추는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계시된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 진리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그들을 일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기 삶의 진정한 목적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임을 깨닫게 될 뿐 아니라, 그것을 혼자가 아닌 한마음 한뜻을 품은 다른 지체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서로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I고린토 12:12).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느님의 선물로서, 성령께서 깊이 관여하시고 돕고 계시다[1]. 다시 말하면, 하느님과의 연합, 그리고 성도 간의 연합은 오직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만 가능하다. 이처럼, 우리의 진정한 회복은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깊은 공조 가운데 신비로운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하느님의 뜻으로 하나가 된 교회는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로마서 15.7).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을 먼저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그분을 본받아 서로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은 자들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처럼 큰돈을 탕감받은 자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적은 돈을 빚진 자를 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오 18.23-35).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하느님에 대한 더욱 깊은 지식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를 깊이 깨닫게 해 줄 뿐 아니라 그 사랑과 자비를 실천적으로 따르도록 이끈다. 또한,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회복뿐만 아니라, 인간과 다른 피조물의 관계 회복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피조 세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태도를 지니게 된다.[2]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에서 비롯되는 모든 종류의 회복은 곧 하느님의 뜻을 확고히 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의 실현이다. 왜냐하면, 회복의 과정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께서 본래 정하신 각자의 자리를 깨닫고 돌아가서, 바른 관계와 질서 안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회복과 일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일치 운동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교회의 온전한 연합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되는 것이다. 각 지체가 한몸에 속한 이유는 한마음 한뜻으로 하느님을 함께 예배하고 영광을 올려 드리기 위함이다. 또한, 한 몸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이렇게 기도하신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 17.23). 교회 공동체가 서로 반목하며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세상에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전파하기 어렵다. 초기 에큐메니컬 운동도 선교지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각 교단 선교사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협력한 것이 그 근간이 되었다.[3] 1952년 Lund에서 개최된 신앙과 직제 대회의 리포트는 일치와 선교의 연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신약성경에서 교회의 선교와 교회의 일치는 깊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을 불러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하셨고, 세상에 그의 선교를 완수하기 위해 제자들을 파송하셨다. 그리스도는 세상이 믿게 하기 위하여 제자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셨다. 교회가 하나되는 역동적인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받으며, 이러한 선교적 과제에 순종할 때이다.[4]

그리스도의 뜻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한 목자 아래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요한 10.15-16).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본질적으로 이미 하나의 몸임을 기억하는 ‘일치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1937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 대회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또한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며,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든 사람은 비록 주의 신적 신비를 정의내리는 데에 의견을 달리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존재하는 하나됨의 초자연적인 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가족의 개념이 그리스도인들을 서로 더 가까이 이끌며, 많은 부분적인 방법이지만 엄격한 공동체들 사이에서 완전한 교제의 미리 맛봄을 지금 추구하고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5]

현재 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과제는 개인이 속한 교회와 교단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교회와 타교단까지도 ‘하나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이며, 현재 살아있는 교인뿐만 아니라 신앙의 선배들과 후손들까지도 ‘하나의’ 보이지 않는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 진실을 깨닫게 될 때 교회 공동체는 성령의 능력으로 진정한 일치의 힘을 경험하게 되며 서로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용서, 그리고 친교와 화해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한 선교의 사명을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한몸으로’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 공동체의 회복이며 하느님의 뜻을 확고히 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2. 사이버 세계의 의미와 영향력


사이버 세계가 처음 등장했을 때 학자들은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나뉘었다. 사이버 세계를 낙관하는 자들은 그 세계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다양한 이상적인 가치들을 실현해 줄 것이라고 예견했다. 반면, 반대파들은 사이버 세계는 현실 세계의 모조품으로서 현실 도피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피해야 할 죄와 어둠의 공간으로 여겼다. 하지만, 낙관론과 비관론 모두 공통의 견해를 공유했는데, 그것은 사이버 세계를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 공간(그것은 천국으로 표현하든 지옥으로 표현하든)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6] 반면, 종교와 뉴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인 Heidi Campbell은 그의 책 “Exploring Religious Community Online”에서 위의 견해들과 함께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Critical friends”의 관점을 소개한다. “’Critical friends’ offers a helpful category for considering both positive and negative internet influences by identifying how they affect individual, community, and social-political structures”.[7] 그들은 기술에 대한 섣부른 판단보다는 그것을 이해하고 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더욱 강조점을 두었다.


현재 사이버 세계는 급성장하여 인간의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 이르기까지 사이버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현실 세계의 활동들이 가상 활동으로 대체되고 있다. 특별히, 인간의 소통 방식은 사이버 세계의 등장으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면대면 소통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미디어 소통 방식은 대부분 온라인 소통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는 이미지와 상징, 특정한 주제에 대한 관점과 해석 그리고 다양한 사상과 의미들을 전달하며 공유한다.”[8] 초기 학자들이 기대하거나 혹은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사이버 세계는 오히려 초현실이 아닌 현실을 좇아 그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으며, 현실 세계를 향한 영향력을 급속하게 키워가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각도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파장을 일으키며, 세계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흐름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이버 세계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세계의 본질과 영향력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여러모로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이버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보다는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기에 급급하며 급속한 기술의 발전 때문에 나날이 변화되는 사이버 환경에 발 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것이 국가별로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인간은 편리하고 빠르고 값싼 인터넷의 서비스에 매료되어 더욱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이버 세계에서 소비하고 있으며, 가상의 활동을 통해 얻는 다양한 가상 경험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인간은 삶 속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지식과 정보를 얻게 되고, 이는 인간의 가치관과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다. 인간은 매일의 경험을 내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교훈을 얻게 되며, 이는 사건과 사물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한 관점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 미래의 삶의 방향과 다양한 선택에 기여한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서 경험의 의미와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더욱 주목해야 할 현상은 인간의 경험의 영역이 이제 비단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가상 공간에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상 경험은 이미 다양한 현실 경험을 대체하고 있으며, ‘to be online or not to be’(온라인에 존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인간의 삶에서 매우 의미 깊게 고려해야 할 실질적 물음이 되었다.


인간의 다양한 경험 중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경험은 정체성 형성 과정에 영향을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보편화로 인해 점점 많은 사람이 온라인을 통해 사회적 소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SNS를 통해 사람들은 텍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동영상을 사용해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온라인 게임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캐릭터의 활동과 움직임, 혹은 채팅창을 통해 서로 소통하거나 더 나아가 최근에는 음성 채팅과 같은 더욱 실감 나고 역동적인 소통 방식을 선택한다. 또한, ‘가상 현실’ 기술의 발달로 좀 더 현실과 비슷한 차원의 가상 경험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를 사회적 소통을 위해 활용하는 서비스(Social VR)도 상용화되고 있다. 이제 많은 사람이 현실 공간이 아닌 가상 공간에 모여 함께 교류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 다양한 정보와 메시지를 공유한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함과 이점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세계에도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현실에서 사람과 사람의 친근한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들은 온라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이버 폭력은 물리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오히려 강한 독성을 지닌 체 온라인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되어 가상과 현실 공동체 모두를 위협한다.


인간의 부패한 죄성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이 모이는 어느 곳에서든지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타인에 대한 미움과 시기는 주로 글이나 이미지를 통해 사이버 공간에 표출되고, 이는 현실 세계보다 빠른 정보 전달력과 쉬운 접근성으로 인해 더 빠르게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된다. 만약 고의로 상대에 대한 허위 정보나 개인 신상정보를 인터넷상에 유포할 경우 그 파급력은 막대하며, 한번 유출된 정보를 삭제하기가 어려워 영구히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피해자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9]

이러한 사이버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사이버 세계를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이는 초기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에 사이버 세계를 현실을 초월하거나 반대로 현실을 모조한 이질적 공간으로 여기던 시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를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이기에 윤리적 일탈이 허용되는 곳으로 간주하거나, 일부는 그곳을 비현실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현실의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는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의 상호 영향력과 가상 경험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여 인간이 바른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사이버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방해하며, 또한 사이버 세계를 통해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윤리적 경각심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사이버 세계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바르게 판단하여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이버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 연결된 공간으로서,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고 있으며, 두 세계를 통해 다양한 공유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이 직접 두 세계를 오가고 있으며, 온라인에서 마주하게 되는 가상 정체성 뒤에는 실제 살아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사이버 세계를 하나의 공간일 뿐 아니라 공동체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주의할 것은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를 동일한 공간으로 인식하여 현실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이버 세계는 현실과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할 뿐, 가상 경험은 현실의 경험과 같을 수 없다. 온라인을 통한 소통은 인간에게 편리함과 이점을 주지만 실제 면대면 소통과 물리적 만남을 통해 얻는 만족을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자칫, 사이버 세계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무분별한 수용은 현실 세계보다 그곳을 중시 여기는 현실 도피를 조장할 수 있으며, 이는 비인간화 현상을 초래하여 인류에 그 무엇보다 큰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교회와 사이버 세계


사이버 세계의 발달은 인간의 종교 활동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개인의 신앙과 영성에서부터 교회의 전반적인 문화와 선교에 이르기까지 다각도의 영향을 끼친다. 애초에 미디어의 발달은 교회의 역사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했다. 초대 교회 시대 사도 바울이 편지를 통해 각 교회와 소통하며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나 루터가 당시 발달한 인쇄술을 통해 종교 개혁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쉽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사이버 세계는 다양한 종교적 가상 활동을 제공하며 우리가 이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종교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 교회에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는 예는 다양하다. 일반적인 교회 공식 홈페이지는 대표적으로 교육(교회, 교단 관련 정보와 신학적 지식 제공 등)과 친교(게시판, 사진첩, 댓글 등)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방문자들이 주일 예배 동영상(혹은, 설교 동영상)과 주보를 확인하고 개인적으로 중보 기도를 요청할 수 있는 기능과, 일부 대형 교회에서는 실시간으로 온라인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유명 SNS의 경우, 교회는 세부 그룹별로 채팅방을 개설하여 신앙적 경험과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위한 사전 논의와 준비를 위해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10]

사이버 세계가 등장하고 발전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접근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교회의 관심과 신학적 성찰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이미 많은 신앙인의 삶과 영성이 사이버 종교 활동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교회 공동체의 활동 형태와 문화의 형성에 사이버 세계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이버 종교 활동과 문화의 본질적 특성과 이를 경험한 사람들과 교회의 변화에 주목하여 가상 종교 경험의 영향력과 그 방향성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교회는 각 시대 인간의 삶과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현상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삶의 방향성을 사람들에게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교회는 사이버 세계의 본질과 영향력을 신학적으로 성찰하여 현재 인류가 처한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더불어, 교회와 세상에 어떻게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가상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천적인 방법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시대에 가장 유용하고 효과적인 소통의 장이 된 사이버 세계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뜻과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선교적 고민과, 사이버 세계의 환경에 적합한 선교적 방법들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하느님의 뜻이 전파되는 과정에서는 그 어떤 지역적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가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에 따라 “땅끝”까지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서, 사이버 세계는 이 시대에 주어진 효율적인 복음 전파의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11]


4. 회복과 사이버 에큐메니즘(Cyber Ecumenism)


글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간의 진정한 회복은 하느님과의 온전한 연합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곧 교회 공동체의 회복과 직결되며 하느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들은 교회가 단 하나의 공동체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출생의 진실을 알게 된 형제자매들과 같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며 다투고 흩어져서 살다가, 마침내 아버지에게 돌아와 그들이 본래 한 부모 아래 한 혈육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실을 믿는 순간부터 그들의 관계와 서로를 향한 태도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며, 서로 사랑과 친교를 나누게 되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것이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공통분모로 이미 하나에 속하였기 때문에, 현시대 교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일치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계시의 빛 가운데 가능하며, 성부 성자 성령을 떠나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을 통해 정의하는 사이버 에큐메니즘(Cyber Ecumenism)은 ‘일치의 정신’의 회복을 온전히 가능하게 하는 ‘복음’을 어떻게 사이버 세계를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는가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실천이며, 또한 ‘일치의 정신’을 회복한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사이버 세계를 통해 구성원 간에 깊은 친교와 소통을 지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창의적인 제안이다. 더불어, 각 교회와 교단의 구성원들이 사이버 세계 안에서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그들이 한 몸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하느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수 있는 온라인 토양에 적합한 방법들을 신학적으로 연구 개발하는 것이다.


사이버 에큐메니즘(Cyber Ecumenism)에서 무엇보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교회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해주는 핵심 본질인 복음의 진리를 온라인을 통해 교육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시편 143:10). 이번 CCA 총회 부주제 중의 하나인 ‘Towards Affirming the Will of God’(하느님의 뜻을 확고히 함을 향하여)은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교회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며, 하느님의 뜻을 온라인을 통해 전파하는 방법들을 신학적으로 성찰하여 주의 깊게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정의는 말 그대로 공통의 분모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데에 있다. 그 ‘공통의’ 핵심가치를 견고히 붙들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중심점 없이 흩어지게 되며 더 이상 공동체라고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 교회 공동체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된 공동체이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로 구성된 하느님의 백성이자 곧 나라이다(1 베드로 2.9).


사이버 세계의 발전으로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유 문화에 깊이 참여하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것을 타인과 공유할 때 보람과 만족을 느끼며, 혼자가 아닌 함께 경험할 때, 공감이라는 감정의 나눔을 통하여 더 깊은 차원의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사이버 세계는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실현 가능하도록 텍스트와 이미지, 동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의 감정과 경험, 정보와 지식, 메시지와 가치관까지도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사이버 세계의 이점을 활용하여 기독교의 진리와 하느님의 뜻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유할 수 있다면, 시간적 물리적 한계뿐만 아니라 경제적 제약까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공식 홈페이지 제작이나 SNS 활용, 혹은 뉴스레터나 웹진을 발간하여 이메일 리스트를 통해 발송하는 방법 등이 있다. NCCK 신학위원회는 매달 ‘사건과 신학’ 웹진을 발간하여 회원 교단들과 단체 구성원들에게 배포한다. ‘사건과 신학’는 다달이 시의성에 맞는 주제들을 선정하여 다양한 교파에 속한 집필진과 외부인사들의 글을 업로드하여 이메일을 통해 전송한다.[12] 또한, 대한민국의 일부 교단과 어린이 선교단체는 증강 현실 기술을 통한 주일학교 성경공부 교재를 발간하여 가상 경험과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13] 이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애니메이션을 이용하여 visual literacy(이미지를 해석하는 능력)를 함양한 요즘 세대에게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할 뿐 아니라,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여 더욱 깊은 차원의 이해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사이버 세계를 통한 복음 전파는 과거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동영상을 통해서도 손쉽게 전파가 가능하다는 특성이 있다. 더 나아가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 기술을 통하여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차원의 경험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결국,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기독교 메시지는 언제나 동일하지만, 교회는 그것을 전달하는 미디어에 따라 그 형태는 변화될 수 있음을 고려하여 사이버 세계에 적합한 언어로 기독교 지식을 공유하며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전달되는 복음의 메시지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교회 일치 정신의 회복을 일으킬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온라인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뜻을 깨달은 사람들은 사이버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 사랑을 실천하며, 교회 공동체의 친교와 나눔, 그리고 선교를 향한 열망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이버 에큐메니즘(Cyber Ecumenism)의 두 번째 중요한 주제는 한 몸 된 교회 공동체의 친교와 소통을 위한 사이버 세계의 효과적 활용과, 로마서 15:6절의 말씀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을 온라인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사이버 세계는 소통의 편리함과 자유를 제공하며 이는 현시대의 소통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변화는 그 어느 곳보다도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인들 간 친교와 관계 형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 공식 웹페이지를 통한 정보 교류, SNS를 통한 실시간 소통, 예배와 설교 동영상 시청과 다운로드, 이메일과 댓글 서비스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과거 소속 교회와 교단 중심의 제한된 소통 방식에서 지역과 교단을 초월하여 소통할 기회가 증가한 것은 에큐메니컬 역사에서 큰 전환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난해 2019년 CCA에서 주최한 ‘Asian Ecumenical Women’s Assembly(아시아 에큐메니컬 여성 대회’에 참석한 한국 참가자들은 SNS를 통해 단체 채팅방을 개설하여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과 정보를 교류하였고, 행사 중에는 실시간으로 공지 사항과 의견을 나누며 소통하였다. 심지어, 행사 이후에도 동일한 채팅방을 통해 서로의 안부와 감상을 나누며 친교를 나누고 있다. 또한, 행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다른 나라의 참가자들과 이메일을 통해 소통하며 친교를 나누고 있는 참가자들도 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친교의 중심은 기도이다. 교회 구성원들은 기도를 통해 영적 일치와 거룩한 기쁨을 함께 누리며 서로를 도울 수 있다. 사이버 세계를 통해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은 공동의 기도 제목을 공유하거나, 서로의 상황과 필요를 실시간으로 나눔으로써 비록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온라인 소통을 통해 동일한 소망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사이버 공간에서 실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은 온라인 친교의 방식이 현실의 친교를 온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없는 환경과 상황 속에서 온라인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큰 축복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만남에서 오는 보다 깊은 차원의 친교와 교류는 온라인을 통해서는 온전하게 경험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혹은 친구 사이에서 물리적 만남을 배제한 온라인 소통만이 충분한 정서적 만족을 줄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사이버 세계를 하나의 공간으로 이해한다면 그 안에 모인 교회 구성원들은 그곳에서 또한 한마음 한뜻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예배해야 한다. 그것은 채팅창을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나 댓글을 통해, 업로드한 영상과 피드백을 통해, 기사와 댓글, 심지어 온라인 게임 캐릭터와 길드(게임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느님을 예배하며 영화롭게 한다. 그러므로, 사이버 세계 안에서 혹은 온라인 공동체 안에서도 그들은 현실과 동일한 언어와 행동으로 하느님을 찬양한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으나 그 동기와 본질은 같다. 교회는 가상의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1고린토 10:31)에서 “무엇을 하든지”는 현실 세계에서의 행위뿐만 아니라 가상의 활동까지도 그 영역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이러한 관점을 포용하고 가상 활동을 영위한다면 그들의 온라인 발자취는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파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사이버 세계에서의 기록과 행적은 빠르게 전파될 뿐 아니라 쉽게 삭제되지 않고 오랫동안 남기 때문에 그 향기는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이버 에큐메니즘(Cyber Ecumenism)이 관심을 두어야 할 중요한 주제는 사이버 세계를 통한 하나 됨의 확인과 확신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체험을 통해 믿고 있는 진리를 더욱 깊이 확신할 수 있으며, 그것은 각자의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한다. 사이버 세계를 통한 친교와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의 공통분모를 확인하고 경험하며 서로 조금씩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체험할 수 있다. 이번 2019 AEWA(아시아 에큐메니컬 여성 대회)를 통해 확고히 경험하게 된 것은 오히려 서로의 차이점이 아닌 서로가 가진 공통의 신앙과 연대감이었다. 이처럼 교회 구성원들 간의 깊은 친교는 표면적으로 크게 보이는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시켜 주기보다는 오히려 내적으로 공유하는 공통의 가치를 더욱 뚜렷하게 확인시켜 주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온라인 소통을 통해서도 이러한 가치를 서로 발견할 수 있다면, 교회와 교단 간의 차이점보다는 서로의 공통분모를 확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회가 더욱 양산될 수 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교회’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은 온라인 소통을 통해 그들 사이의 연합을 좀 더 가시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사이버 세계는 현실보다는 좀 더 뚜렷하게 그 관계의 발자취와 각자의 행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편이며, 현실에서는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2019 AEWA에 참가했던 한국 참가자들의 채팅방은 지금까지도 온라인상에 남아 있고, 이는 가시적으로 그들의 소통과 관계의 역사를 보여주며 여전히 하나의 방에 연합된 네트워크의 형태로 존재한다. 또한, 온라인으로 친구를 맺거나 팔로우를 하는 것, 다른 사람의 글에 공감이나 ‘좋아요’를 누르는 것, 홈페이지에 배너나 링크를 올리는 것, 온라인 공동체에 함께 가입하는 것, 단체 채팅방을 여는 것 등의 온라인 행적은 보이지 않는 관계의 형태를 좀 더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따라서, 교회와 교단 간의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것은 중요한 교회의 과제이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기존 SNS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교회의 네트워크를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들을 연구 개발하고 지역 교회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의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각 교회와 교단 안에서의 온라인 소통은 활성화되어 있으며 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은 사이버 에큐메니즘을 위한 아주 중요한 과제이며 교회연합기구 안에 이를 위한 전담반이 설치되어 온라인 네트워크를 위한 좀 더 기술적이고 실용적인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결론


모든 피조물의 회복은 하느님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으며 온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모든 것의 회복을 가져오며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일치의 정신’을 회복하게 되며 교회가 본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로 연합된 공동체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신앙은 인간의 말과 행위 그리고 삶 전체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거룩한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이는 교회의 구성원들을 진정 마음으로부터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더이상 피상적인 친교가 아닌 진정 하느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서로의 슬픔과 기쁨, 고통과 필요에 깊은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또한, 이러한 회복은 한마음 한뜻으로 하느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모두를 인도하며 그 누구보다 우리 하느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드릴 것이다. 사이버 세계가 이러한 교회의 ‘일치의 정신’의 회복과 그로 인한 진정한 ‘친교’의 회복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이는 기독교 역사와 에큐메니컬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지금은 교회가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차원의 세계와 경험의 영역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그곳에서도 실현되기를 소망하며 진지하고 주의 깊은 관심과 신학적 성찰을 해야 할 때이다. 교회는 사이버 에큐메니즘이 현시대에 주어진 교회의 사명이자 하느님의 뜻을 확고히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 Hodgson Leonard,ed., The Second World Conference on Faith and Order held at Edinburgh, August 3-18, 1937 (London: Student Christian Movement press,1938), 230-231.https://archive.org/details/wccfops1.117/page/230, Internet Archive. [2] 김한나, ‘물질중독’, 사건과 신학, NCCK, 2019, https://nccktheology2019.tistory.com/90 (06.01.2020) [3] 전재옥 외 3인, 에큐메닉스 (서울: 성광, 1988), 10. [4] 루카스 피셔 편, 에큐메니칼 신학의 발전사(I), 이형기 역 (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1998), 122-123. [5] Ibid., 63. [6] Kim Hanna, “Religion and Computer Games: A theological Exploration of Religious Themes in World of Warcraft” (MPhil thesis, Birmingham University, 2012),7-10. https://pdfs.semanticscholar.org/436c/e82235e6bf196f2c074ac2a33694c5c14cf1.pdf, Semantic Scholar. [7] Campbell Heidi, Exploring Religious Community Online (New York: Peter Lang, 2005),17. [8] 김한나, “기독교와 사이버 세계”, 촛불 민주화 시대의 그리스도인, NCCK 신학위원회 편 (서울: 동연, 2017),135. [9] 김한나, “사이버세계의 폭력과 평화”, 3·1정신과 한반도 평화, NCCK 신학위원회 편 (서울: 동연, 2018),231. [10] 김한나, “기독교와 사이버 세계”, 138. [11] Idid., 134-137. [12] 사건과 신학, NCCK, https://nccktheology2019.tistory.com (13.01.2020) [13] Paidionsquare, http://paidionsquare.com/shop/view.php?it_id=14960338149403&tn=$tn(13.0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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