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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하나다-'교회: 공동의 비전을 향하여' 문서 발제

  • Hanna Kim
  • Apr 24, 2020
  • 9 min read

Updated: Apr 28, 2020

이 글은 WCC '교회:공동의 비전을 향하여'문서와 관련하여 NCCK 신학위원회에서 2020년4월24일 발제한 내용입니다.


김한나(대한성공회)

그동안 평신도로서 타교단 신자들과의 교제를 통해 깨닫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서로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교 신앙과 전통 안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둘째, 서로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교회: 공동의 비전을 향하여’ 문서와 이와 관련된 에큐메니컬 문서를 읽고 연구하면서 현 교회의 갈등과 분열의 문제를 극복하고 교회의 일치를 발현하기 위해 교회가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이미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교회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논의가 교회 일치를 추구하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작업임을 인식하였고, ‘교회: 공동의 비전을 향하여’ 문서 또한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서는 신앙과 직제에 관한 첫 번째 문서인 ‘세례, 성만찬, 직제’(BEM, 1982)와 연구 문서인 ‘하나의 세례: 상호 인정을 향하여’, 그리고 이외의 다양한 에큐메니컬 문서와 이와 관련된 의견을 수렴하여 작성되었다. [1]


이 문서는 서론에서 교회를 향한 하느님의 목적과 뜻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일치는 주님의 은사임을 강조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성부께 기도하는 중에 교회를 향한 뜻을 나타내셨으니, 곧 그의 모든 제자가 하나가 됨으로 이로써 세상이 믿게 되는 것이었다(요17:21).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함은 이러한 일치를 향한 주님의 뜻과 주님이 주시는 은사로서의 일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진심 어린 노력을 요청하게 마련이다.”[2] 이러한 관점은 과거 다양한 에큐메니컬 문서에서 이미 강조된 사실이다.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보고서는 일치란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임을 밝혔고[3], 제3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 보고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일치가 있다”라는 사실을 확신한다(엡2:14-16).[4] 따라서, 교회에 필요한 노력은 하느님의 선물인 일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서 삶을 통해 그 진리를 가시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다.[5]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서두에서 자신의 목적을 “교회를 섬기는 것이며, 이로써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와 공동의 삶과, 세상을 향한 증거와 섬김 가운데 표현되는 하나의 믿음과 하나의 성만찬적 공동체를 통한 가시적 일치로 나아가도록 서로를 독려하고 그러한 일치를 향하여 전진함으로 세상이 믿게 되는 것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6]


가시적 일치를 위해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인 교회”(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7]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교회에 소속된다는 것은 곧 지역 교회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편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8] “보편교회는 세계 곳곳에서 신앙과 예배를 통하여 연합한 모든 지역 교회의 공동체적 친교”를 의미한다.[9]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며 다른 지체들과 ‘초자연적인 끈’(supernatural bond of oneness)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10] 이번 의견수렴 문서의 성서적 비전도 다음과 같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11]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녀는 그의 백성과도 연합하여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 이 문서의 중요한 기초가 된 ‘세례, 성만찬, 직제’ 문서는 세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Baptism is the sign of new life through Jesus Christ. It unites the one baptized with Christ and with his people.”[12] 따라서, 교회는 “세례는 일치의 기본적인 결속”임을 기억해야 한다.[13] 또한, 이러한 결속을 더욱 온전히 나타내는 성례전적 친교로서 성만찬의 은총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회는 하나의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는 성만찬을 통한 공동체적 친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선교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It is in the eucharist that the community of God’s people is fully manifested.”[14]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한 분이시며 교회의 창조와 주권은 오직 하느님께 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라가며 모퉁이의 머릿돌(마21:42)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건물로서 함께 지어져 나간다(엡2:20-22). 교회는 이러한 일치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구체적 삶을 통해 구현하기 위해 공동의 성찰과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미 주어진 성도 간의 일치를 지역교회에 전파하고 이를 가르쳐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교회는 이미 한 가족이라는 사실과 한 분이신 하느님을 함께 섬기는 신앙 공동체임을 말씀을 통해 교육하고 공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론에 관한 공동의 신학적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도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 구축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교회의 본질에 관한 지식의 습득과 그로 인한 인식의 변화를 초래하여 교회와 교단 간의 편견을 없애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회복하도록 이끌 것이다. 또한, 진리는 성령을 통해 교회가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추구하는“상호 숙고”(mutual consideration),“상호 존중”(mutual respect),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 “상호 교환”(mutual exchange)[15]과 같은 거룩한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님께서 이루신 일치를 세상에 나타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교회 구성원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순종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는 과정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빌2:13).

교회는 복음, 즉 성부의 아들이시며 성육신 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에 그 핵심과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사실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확증의 말에 반영되어 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복음의 선포를 들음으로 (롬10:14-18)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고전 12:3), 인간은 구원케 하는 믿음에 이르며, 성례전적(성사적) 방편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된다.[16]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한 성도들은 “코이노니아”를 통해 교회와 삶 속에서 일치를 발현한다. “교통, 참여, 친교, 나눔”의 뜻을 가진 “코이노니아”는 “어떤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다”,“함께 나누다”,“참여하다”,“동참하다”,“함께 행동하다”를 뜻하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다.[17] 이러한 깊은 친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기초로 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소유하게 되면 하느님의 또 다른 자녀를 형제자매로 인정하고 서로 가진 것을 공유하며 함께 행동하기를 바라고 소망하게 된다. 하지만, 현시대 지역 교회와 교단 간의 다툼과 반목은 “코이노니아”의 대상을 자신이 속한 교회와 교단에만 국한 시키는 폐단의 결과를 낳았다. 교회의 개념이 개교회 중심으로 정의되고 눈에 보이는 교회 건물로만 인식된다면 보편교회로서 그리스도의 몸은 조각난 실체로서 보이게 된다. “코이노니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동시에 이를 적용하는 대상을 보편교회로 확장하여 교단 간의 편견과 반목을 넘어 친교와 나눔, 대화와 소통의 회복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의 일치와 선교는 상호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성부께 기도하는 중에 교회를 향한 뜻을 나타내셨으니, 곧 그의 모든 제자들이 하나가 됨으로 이로써 세상이 믿게 되는 것이었다(요17:21).”[18] 토론토 문서는 “참교회의 존재이유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공동의 주님으로부터 이 세상 앞에서 공통된 증거를 추구하지 않고서는 함께 만날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19]1952년 신앙과 직제 대회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Christ called His apostles that they might be one and that He might send them forth to accomplish His mission in the world. He prayed for their unity that the world might believe. It was in obedience to this missionary task, including the willingness to suffer for Christ, that the Church experienced the dynamic power of its unity.”[20] 교회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며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러므로 교회의 신앙은 하나이며 교회의 생명도 하나이다. 교회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공동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며 하나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이다. 그 때문에 교회는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방법대로 한 몸으로써 행해야 하며, 교회의 분열이 일치를 향한 그리스도의 뜻과 교회의 선교를 방해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경계해야 한다.


더불어 교회는 현시대 중요한 소통 공간인 사이버 세계를 통한 선교와 온라인 종교 활동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구체적 실천의 방향성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매체의 발달은 종교와 깊은 연관성을 가졌는데, 이는 종교개혁뿐만 아니라 기독교 예식의 획일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특별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 예배가 확산되면서 온라인 매체의 중요성은 전 세계적으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우선 사이버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온라인 활동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모색해야 한다. 사이버 세계는 인간이 현존하는 물리적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비물리적 세계이며, 현실의 연속체(continuum)로서 존재한다. 이는 또한 쌍방향의 상호작용과 소통이 역동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공간의 개념으로서 조명되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두 세계 사이의 연속성과 유사성을 과장하여 양자를 전적으로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일화는 현실의 가치와 관계를 경시하고 가상 세계로 도피하려는 비인간화 현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사이버 세계의 가치와 그 효율성은 고려하되, 다양하고 다채로운 감각 정보를 통해 경험하는 물리적 현존감이 제한된 DATA에 의지하는 가상 현존감(virutal presence)으로 온전히 대체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사이버 세계를 공동체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세계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공간으로서 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가상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 공동체를 현실의 공동체와 전적으로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는 현실의 공동체적 친교를 강화하고 지금과 같이 물리적 친교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공동체적 친교를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리적 만남과 면대면 소통에서 누리는 서로 간의 깊은 정서적 감정적 교감을 온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사이버 세계는 ‘instead of the Church’ 가 아닌 ‘for the Church’의 관점에서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예배도 이와 동일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동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임재를 함께 경험하며 생동하는 공동체적 친교를 나눈다. 하지만, 온라인 예배는 공동체적 친교로서 교회의 역할을 부분적으로는 가능하나, 이를 온전히 수행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성찬식과 세례 예식 등과 같은 물리적인 만남과 공동체적 행위가 중심이 되는 성사를 집행하고 참여하는데 분명 제한이 있다.


그러나, 물리적 만남이 불가능한 상황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지역에서 온라인 예배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이를 위해 지속해서 온라인 예배를 위한 기술 도입과 개발이 필요하다. 온라인 공간은 선교를 위한 중요한 공간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제공한다. 더불어, 보편교회의 공동체적 친교를 위한 아주 효과적인 소통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타교단의 예배를 경험하고 정보를 나눔으로써 서로 간의 편견 해소와 공통의 유산을 나눌 수 있는 유익이 있으므로, 사이버 에큐메니즘을 위한 교회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교회는 기술적 방법론적 접근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이버 환경을 이해하고, 투명한 사이버 정체성을 통한 진정한 공동체적 친교를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신앙의 동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교회가 현실의 삶을 통해 복음과 신앙을 발현하듯, 가상의 삶도 동일한 방식으로 영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교육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신약성서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변화된,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과 더불어 종결된다(계21:1-22:5참조).”[21] 교회는 하나의 신앙과 공동의 비전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함께 기다리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워지고 온전해질 약속의 때를 기다리며 현재의 고난을 함께 인내한다. 교회는 하나의 소망을 품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최후 승리를 믿음으로써 이미 실재하는 그 승리를 함께 누리며 기뻐한다. 교회의 주권은 그리스도께 있으며 신랑이신 주님은 신부인 교회를 깊이 사랑하신다. “성령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소서!’하고 외치십시오. 목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마시십시오”(계22“17). 신랑이 한 분이신 것처럼 신부인 교회도 하나이며, 머리이신 주님께서 한 분이시듯 그의 몸 된 교회도 영원히 하나다.

‘사이버 에큐메니즘’의 관점에서 문서 해석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8:31-32/공동번역).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 공동의 비전을 향하여” 문서와 더불어 다양한 에큐메니컬 보고서는 교회의 일치는 이미 주어진 것이라는 진리를 밝힌다. 이 진리는 타교단과 교회를 향한 편견과 미움에 사로잡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자유롭게 하며 심각한 다툼과 분쟁으로 깨어진 공동체적 친교를 회복하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 뜻이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발현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겨질 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흔히 지적인 동의가 믿음의 행위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옳음을 머리로만 인정할 뿐 마음의 진정한 변화와 실천의 의지로 이를 승화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난 하느님의 자녀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하느님의 나라에 속하며 하늘의 시민권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하며 하나의 가족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삶은 이러한 진리의 기초위에 세워져야 하며 삶의 행위는 이 진리를 실천하고 증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때론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이 진리를 역행하고자 할지라도 우리의 의지는 항상 진리의 빛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온전히 내어드릴 때 비로소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진리는 우리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리는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공유되어야 한다(마28:20). “복음은 특정 시대와 상황에 알맞은 언어와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선포되므로 각 시대와 장소에서 진정성 있는 삶으로 구현될 필요가 있다.”[22] 교회가 사이버 세계를 활용한다면 시대의 언어와 상징을 통해 효과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다.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참 진리를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다. 사이버 에큐메니즘은 교회 일치의 시작과 중심이 되는 복음을 온라인을 통해 효과적으로 공유하는 방법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온라인을 통한 교회 구성원 간의 초교파적 친교와 소통의 신학적 의미를 성찰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제안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더불어, 온라인 에큐메니컬 경험을 통해 교회가 근본적으로 한 몸임을 체험하여 진리를 더욱 확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온라인 공간을 통해 하느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을 연합하여 연구 실천하는 것을 지향한다.[23]


이러한 관점에서 앞서 강조했던 에큐메니컬 운동의 중요한 가치인 “상호 숙고”(mutual consideration),“상호 존중”(mutual respect),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 “상호 교환”(mutual exchange)의 온라인 실현 가능성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의 차이점을 존중하고 각 교회에 존재하는 참교회의 요소들을 인정하며 교회의 갱신을 위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데 있어 사이버 공간과 온라인 소통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이 문서에서 정의하는 공동체적 친교로서 교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표지 중 세례와 성만찬을 제외한 “사도들의 신앙을 받아서 공유하는 것”,“서로를 위해 또한 세상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것”,“사랑안에서 서로 섬기는 것”,“다른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는 것”,“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것”[24]이 온라인에 적합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 또한, 기술적 관점에서 지역 교회와 교단을 넘어선 초교파적 네크워크 형성의 가능성과 AR, VR과 같은 최첨단 가상현실 기술을 통한 복음의 전파의 방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논의가 교회연합기구들을 통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1] 신앙과 직제 위원회, “교회: 공동의 비전을 향하여”, 자료 모음 WCC 제10차 총회 대한민국 부산, 2013 (WCC Publication,2013), 12-15. [2] Ibid.,14-15. [3] 루카스 피셔 편, 에큐메니칼 신학의 발전사 I, 이형기 역(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1998),99. [4] Ibid,. 225 [5] “1950 Toronto Statetment“참고, “They do not have to create their unity; it is the gift of God. But they know that it is their duty to make common cause in the search for the expression of that unity in work and in life.” [https://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central-committee/1950/toronto-statement] [6] 신앙과 직제 위원회,11. [7]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the First Council of Constantinople), AD381. [8] 신앙과 직제 위원회, 22-23. [9] Ibid.,38. [10] 루카스 피셔 편, 63. (제2차 신앙과 직제 대회 보고서, [애든버러,1937.8.3.-18]) [11] 신앙과 직제 위원회,11. [12] Faith and Order,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WCC, https://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commissions/faith-and-order/i-unity-the-church-and-its-mission/baptism-eucharist-and-ministry-faith-and-order-paper-no-111-the-lima-text [13] 신앙과 직제 위원회, 45-46. [14] Faith and Order,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WCC, https://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commissions/faith-and-order/i-unity-the-church-and-its-mission/baptism-eucharist-and-ministry-faith-and-order-paper-no-111-the-lima-text [15] 1950년 WCC의 토론토 문서는 위의 4가지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계교회협의회 회원교회들은 사도신경이 고백하고 있는 거룩한 보편교회에 대한 다른 교회들의 관계를 서로 숙고해야 할 과제로 생각한다...그들은 신앙과 직제상의 차이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서로가 한 분이신 주님을 섬기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상호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차이점들을 연구하기를 원한다...세계교회협의회 회원교회들은 다른 교회 안에 참교회의 요소들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들은 이러한 상호 인정이 그들로 하여금 서로서로 진지한 대화를 하게 할 것이며, 이러한 대화는 이 같은 진리의 요소들이 완전한 진리에 대한 인정과 완전한 진리에 근거한 일치로 이끌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교회생활은 교인들과 세상에 대한 증거를 통해 자신이 표현되기 때문에 끈임없는 갱신이 필요하다. 교회들은 이 분야에 있어서 생각과 경험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서로서로를 도울 수 있고, 또 도와야 한다.” 루카스 피셔 편, 233-237 참고. [16] 신앙과 직제 위원회, 25. [17] Ibid. [18] Ibid.,14-15. [19] 루카스 피셔 편, 235. [20] “Report of the Third World Conference on Faith and Order, Lund, Sweden: August 15-28, 1952”, Internet Archive, https://archive.org/details/wccfops2.017/page/12 [21] 신앙과 직제 위원회, 67. [22] Ibid.,35. [23] 사이버 에큐메니즘에 대한 자세한 정의와 설명은 필자의 글 “하느님과의 연합을 통한 회복과 사이버 에큐메니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cyberecumenism.com/)

[24] 신앙과 직제 위원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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